이 책은 일본의 타무라 히로시라는 한 개그맨이 어렸을 때부터 겪어왔던 일들을 엮은 자전적 일대기이다. 첫 장면부터 아버지가 '해산!'이라고 외치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중학생이 집없이 어떻게 살았는지의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나는 처음에 너무 만화같다고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각자 살라고 하고 본인은 자취를 감출 수 있단 말인가. 대학생인 자녀도 있었지만 아직 미성년자인 자녀가 둘이나 있는데, 부모로써의 책임도 지지 않고 그냥 방치하다니. 나는 정말 황당했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글쓴이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나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혼자 삼남매를 키우느라 많이 힘드셨을 거라고,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거라 이해한다고 나온다. 참고로 어머니는 저자가 초등학생 때 직장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저자는 그런 불행한 일을 겪고 또 집을 잃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면서 마키훈 공원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는 중학생인 데다가 돈도 없고 가진 게 없어서 자판기 주위에서 돈을 주으러 다니고 그 돈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그마저도 없으면 풀을 뜯어 먹거나 물로 배를 채우거나 심지어 종이박스를 먹었다고 한다. 묘사 장면이 정말 웃기면서도 슬펐는데, 나물을 무치는 원리처럼 박스를 물에 적셔서 먹었다고 한다. 먹을만한 게 아닌 것까지 먹어가며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심지어 목욕할 곳도 없어서 비오는 날에 빗물로 샤워를 했다고 한다. 여기서 그나마 다행인 것이 이때가 여름방학이었다는 것이다. 추운겨울이 아닌 것도 다행이고, 학교를 가는 날이었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고생을 하는 와중에도 웃긴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아마 그의 직업이 개그맨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마키훈 공원에서 잠을 잤던 장소가 똥모양의 미끄럼틀이다. 똥모양이라는 것도 웃겨죽겠는데 거기서 어린애들이 그를 똥귀신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를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그는 그저 애들한테 겁을 줄 뿐이었다. 하지만 애들이 돌을 던지면서까지 괴롭힘의 강도가 심해지자, 그는 설사를 하는 벌을 내릴거라고 애들한테 겁을 준다. 그 시점에서 아이들의 괴롭힘이 멈추는데, 어떤 쪽지를 받게 된다. 어떤 한 아이가 그를 똥의 신이라 지칭하며 설사가 멈추지 않는데 어떡하냐는 내용이었다. 똥귀신에서 똥신으로 승격하게 된 것이다. 난 이 에피소드가 너무 웃겼다. 하지만 사람한테 돌을 던지는 아이들의 모습에 좀 충격이 크기도 했다.

 

난 그가 어머니에 대해 얘기를 할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항상 어머니는 남에게 양보하고 자신의 응석도 잘 받아주는 분이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장면을 생생히 묘사하는데 너무나도 슬펐다.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들에게 미안하다고만 하셨다고 한다. 유독 이런 장면에 감정이입이 잘되는 이유가 나름 있었다. 주위에서 큰 병을 앓고 돌아가신 분이나 투병 중이신 분들이 요즘 부쩍 늘어나서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인맥이 늘어나서인지, 지금 내 나이때가 그런 소식이 많이 들려오는 시기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주위에서 그런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우리 부모님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그런 일들이 우리 가족을 피해가면 안도하면서도 실제로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이 너무 안타깝고 우리도 언제 닥칠지 몰라 불안하기만 하다. 주위에서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 일이 아닌데도 이렇게 슬퍼지는데 당사자들은 얼마나 청천벽력 같을까. 게다가 이 책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도 직장암에 걸리셨다고 한다. 또 불행한 일이 겹친 것이다. 아버지 혼자 일과 집안일 병행하다가 병이 난 것인데 다행히 조기발견 해서 생명의 위협은 피했다고 한다. 하지만 입원해 있는 동안 직장에서 잘리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그래서 글쓴이는 해산선언을 한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하며, 오히려 감사하고 죄송스런 마음을 가진다. 삼남매를 지키기 위해 홀로 싸우셨는데 오히려 자기네 형제들이 아버지를 많이 돕지 못해 죄송스러운 마음이라고 한다. 이제는 자신들이 아버지를 지켜드릴 차례라며 아버지가 돌아오실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아버지를 만나지 못한 모양이다.

 

홀로 공원에서 지내다가 한 친구를 만나게 되는데 그 친구 덕분에 타무라는 공원생활에서 탈출하게 된다. 친구집에서 생활하다가 이웃들의 도움으로 뿔뿔이 흩어졌던 형제들이 함께 살 집을 얻게 된다. 이 장면에서 타무라는 불행한 일을 많이 겪기는 했지만 인복이 정말 많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분들이 없었다면 그의 인생은 더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정말 감동적인 얘기이긴 한데, 과연 지금 현실에서도 이렇게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현실에서 이런 좋은 분들을 만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는 정말 인복이 타고났다. 평소 학교생활도 들어보면 성격이 활발하고 유머가 넘쳐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개그맨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대목이었다.

 

타무라는 이렇게 불행한 일들이 겹치면서 인생에 회의감을 느끼고 학교도 많이 빠지고 일탈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 타무라를 붙잡아준 것이 담임선생님이다. 담임선생님은 타무라의 속마음을 듣고 편지를 써주신다. 타무라는 그 편지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고 할 만큼 제대로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그 편지는 아직도 가지고 있을 만큼 소중하다고 한다. 나도 내 인생에서 이런 스승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되었다. 난 타무라 담임처럼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꼭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개그맨의 이야기는 실제로 일본에서 히트를 쳐서 만화나 영화,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유독 사랑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보통 자수성가한 사람의 고생담보다 '홈리스 중학생'이 특별한 것은 바로 '인정(人情)'이라는 것이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현실에서는 '인정'이 메말랐기 때문에 그것이 그리워 이런 이야기에 열광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우리나라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있지 않나 싶다. 드라마 성공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인정'이 많이 묻어있었기에 사람들이 그 시절을 그리워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이야기 속에서는 '인정'뿐만 아니라 글쓴이가 주위사람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마음'이라는 진심어린 메시지도 느낄 수 있다. 친구가 재미있다고 추천해준 책이었는데, 나에게 심리적으로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주위에서 나를 도와주거나 격려해 준 사람이 있다면 꼭 감사의 말을 전해야겠다고 결심이 들만큼 감사하는 마음에 대해 많은 깨달음을 주기도 하였다. 이 책은 두께도 얇고 글씨도 큼지막해서 단숨에 읽기 좋은 책이니 꼭 추천해주고 싶다.

 

 

 

 

소설의 절반 가량을 읽으면서 책 제목이 왜 라플라스의 마녀일까라는 의문을 계속 품고 있었는데, 그에 대한 힌트가 책 끝자락에 나온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라플라스는 ‘만일 우주의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해명하고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다.’ ‘어느 순간 모든 물질에 있어서의 역학적인 데이터를 알고 그것을 순식간에 해석할 수 있는 지성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 불확실한 것은 없어져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주로 근대의 물리학 분야에서 미래의 결정성을 논할 때에 가상하는 초월적 존재의 개념이라고 한다. 후에 이 존재에게는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소설 속에서는 아마카스 겐토가 ‘라플라스의 악마로’, 마도카가 ‘라플라스의 마녀’로 지칭되고 있는 듯하다.

 

소설 첫 부분에서는 한 소녀가 토네이도로 인해 엄마를 잃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는 이 장면에 뭔가 의문이 들었다. 자연재해라니,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이 사건이 나중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걸까? 이 장면이 끝나고 나면 다케오라는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소녀의 경호원으로 일을 하게 되는 것인데, 이 소녀에게는 비밀이 많다. 그리고 이 소녀는 앞에서 토네이도로 엄마를 잃은 소녀였는데, 이름은 마도카이다. 다케오의 묘사에 의하면 마도카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날씨를 맞춘다든가, 풍선이 정확한 곳으로 가게 날린다든가, 종이비행기를 날려서 되돌아오게 한다든가, 신기한 일 투성이지만 애초에 계약할 때 마도카에 대한 질문은 금지되었기 때문에 다케오는 그저 호기심을 속에 감추고 침묵을 지킬 뿐이다. 나도 이 장면에서 그녀에게 신비한 능력이 있는 줄 알았다. 초능력인가? 그럼 ‘라플라스의 마녀’ 랑 마도카랑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면서 과거에 토네이도로 엄마를 잃고 나서 무슨 능력을 얻게 된건가 무수히 많은 상상과 추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비현실적인 얘기라 답답할 뿐이었다. 아마 ‘라플라스’라는 단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어느 정도 더 쉽게 예상했을 거라고 본다. 인상깊었던 부분은 마도카가 도망쳤을 때 다케오가 깨닫는 장면이다. 자신은 그녀를 위험으로부터 경호하기 위해 고용된 것이 아니라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는 역할이었단 것을... 나도 여기서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의사 아빠를 두고 있어 부유한 집의 자식이니 뭔가의 위험 때문에 경호원을 옆에 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감시원을 옆에 둔 것이었다. 그래서 항상 기리미야 레이라는 여자도 옆에 꼭 붙어다닌 거구나하고 깨닫는 나였다.

 

그리고 드디어 사건이 터진다. 치사토와 미즈키 요시로 부부가 온천여행을 갔는데 남편인 요시로가 아카쿠마 온천지에서 죽은 것이다. 치사토는 요시로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젊은 여자였고 그녀가 늙은 요시로와 결혼한 이유는 영화감독인 그의 재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리고 폭포를 보러 가기 위해 산길을 가다가 치사토가 카메라를 두고 왔다며 남편만 두고 떠난 뒤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쓰러져 있었다. 그가 죽은 자리 주위에는 황화수소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여기서 그녀의 알리바이는 성립하지만 그녀의 살해동기도 충분히 있을 뿐만 아니라 미스테리한 사건 현장은 타살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아오에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지구과학 환경 전문가로 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황화수소 사고의 원인규명을 위해 온천지에 나가게 되는데 마도카라는 소녀를 마주치게 된다. 도마테 온천에서도 황화수소 사고로 성인남자 한명이 사망하게 되는데, 거기에서도 마도카를 다시 마주치게 되고 그는 그녀에 대해 호기심을 품기 시작한다. 나카오카 형사도 그를 찾아와서는 타살 의혹을 제기하자, 그는 이 사건과 아무 관련 없을 것 같은 평범한 사람인데도 점점 사건에 말려들게 되고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아오에 교수는 두 온천지 사고의 공통점을 찾아낸다. 사망자들은 모두 영화 관련 사람들.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아마카스 사이세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아마카스 사이세이라는 사람의 블로그를 읽게 되고 그의 가족들도 황화수소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서 나는 머리가 터지기 시작한다. 뭔가 연계점이 발견되기는 했는데 어떻게 연결이 되는건지 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카스의 딸이 황화수소로 자살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아내도 죽고 아들은 식물인간 상태가 된 것으로 나온다. 아들 겐토는 뇌수술에 성공하고 점점 빠르게 회복하지만 기억상실로 인해 가족을 기억하지 못하고 낯선 아버지를 달갑지 않아한다. 여기서 아마카스는 더 이상 아들을 찾아가지 않았다고 하고 글이 끝나있다. 참고로 여기서 또 하나의 연계점이 나온다. 여기서 이 아들을 수술한 사람이 바로 우하라 박사. 마도카의 아버지이다. 나는 처음에 아오에가 블로그 관련 얘기를 할 때만 해도 이 아들이 중요한 인물일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였다. 그저 아마카스 사이세이에게 집중하고 있었는데, 겐토라는 인물에 대해 엄청난 진실과 반전이 뒷부분에 나온다. 일단 요약하자면 아마카스가에 일어난 황화수소 사고는 사실 아마카스가 저지른 일이고 아들 겐토는 이 사실을 알고 있고 기억상실인 척 연기한다. 그리고 앞에서 일어났던 사고들은 모두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위해 겐토라는 인물이 저지른 것이다. 여기서 또 치사토와 겐토가 공범인 사실도 드러난다.

 

여기서 어떻게 저런 일들이 가능했는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아오에 교수도 전문가이지만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겐토는 뇌수술을 받고 나서 엄청난 능력을 갖게 된다. 남들이 보면 초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 속에서는 엄연히 과학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물리적 움직임을 보고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예지능력이 생긴 것이다. 일련의 물리현상에는 사실상 예측 불가능한 요소는 일절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현상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즉 현상이 일어나기 전에는 예측하지 못한다. 오감을 통해 수집되는 현재 상황에 관한 정보를 즉각 즉각 분석해서 그다음 순간에 어떻게 될지를 예측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그저 감탄만이 나왔다. 작가가 이런 과학적인 요소도 소설 속에 넣기 위해 공부를 많이 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긴다. 마도카는? 마도카도 겐토와 비슷한 능력이 있지 않나? 사실 마도카는 정상인임에도 불구하고 겐토의 능력을 가지고 싶어 겐토에게 했던 똑같은 수술을 받게 된다. 그로 인해 기적적으로 겐토와 똑같은 능력을 갖게 된 것이고. 여기서는 좀 비현실적임을 느끼긴 했다. 그녀가 겐토의 능력을 갖고 싶다 결심한 계기는 바로 맨 앞의 토네이도 사건이다. 자연재해로 인해 엄마를 잃은 슬픔으로 인해 자연재해를 예측해서 피해를 줄이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에 겐토는 아마카스를 죽이려고 하지만 마도카, 아오에 교수가 사건에 끼어들면서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겐토는 실종되고 아마카스는 병원에 입원하지만 자살한다... 마도카는 일상생활로 돌아왔지만 겐토가 사라진 후로 애써 태연한 척 한다고 다케오가 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뭔가 마지막은 흐지부지 끝나버린 느낌...? 근데 마지막에 마도카와 다케오의 대화가 인상깊었다. 마도카가 자신에 대해 한 가지만 질문해도 된다고 허락하자 다케오는 세상의 미래가 어떻게 보이냐고 질문한다. 마도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모르는 게 더 행복할 거라고 말하며 소설이 끝난다. 이 장면에서 독자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지 않나 싶다. 미래는 모르는 게 더 행복할 것이다... 이 소설 중간에 예측하지 못해야 꿈을 꿀 수 있다고 언급하는 장면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미래를 알면 얼마나 좋을까하며 가끔씩 상상해보기도 한다. 물론 나도 그런 적 있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니 어쩌면 불행한 일이 될지도 모르기에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었다. 미래를 알면서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똑같이 나쁜 일도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복권번호를 알 수 있다는 좋은 일이 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던가 하는 나쁜 일도 있다. 이런 일이 예측가능하다면 일상생활이 과연 가능할까? 그리고 이미 다 알기에 꿈을 꾸지 못한다. 꿈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이로운 것인데. 꿈을 꾸면서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사람이다. 꿈으로 인해 좌절했던 마음도 다시 일으키고 또다시 노력한다.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인 면을 다룬 추리소설이긴 했지만 나름 작가의 메시지를 잘 전달했다고 본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아주 재밌다. 책이 두꺼워서 언제 다 읽나 싶지만 술술 잘 읽혀서 어느새 책 한권을 다 읽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전부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장르가 로맨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추리, 스릴러 등 복합적인 것이었다. 이 소설에는 정말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읽다가 어떤 이름이 나오면 이 사람이 누구였는지 까먹을 때도 있다. 나만 그런가. 이 책은 흡입력이 정말 대단하다. 한 번 읽으면 꼭 끝까지 읽게 되는 마성의 힘이 있다. 주인공이 추리를 하면서 작가가 놓았던 떡밥들이 하나둘씩 풀리기 시작하면 너무 흥미진진해서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다. 작가 라파엘의 약혼녀 안나가 실종되면서 그 뒷면에 있었던 사건들이 줄줄이 튀어나오는데, 작가의 창의력과 천재력에 감탄하고 만다. 어떻게 이렇게 사건들을 매끄럽게 연결시킬 수 있지? 이 책 한권에만 해도 터진 사건들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안나가 신분세탁을 하게 된 계기, 하인츠 키퍼 납치사건, 조이스 칼라일 사망, 조라 조르킨 사망 등등 수많은 사건들이 이 소설 속에 점철되어 있다. 처음에는 사건의 결과만 제공함으로써 독자들도 함께 추리할 기회를 준다. 그러다가 한 순간에 빵 터트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난 읽다가 간혹 소름 돋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는 불륜, 정치, 범죄, 경찰 등 다양한 요소가 얽혀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사건 모두가 그냥 나오는 법이 없다. 꼭 무언가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책을 읽으면서 항상 긴장을 놓치지 않고 하나도 빠짐없이 고도의 집중력으로 읽어야 한다. 믈론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너무 흥미진진해서 집중력이 저절로 높아진다.

 

주인공은 추리 소설 작가이며 이름은 라파엘이다. 그는 아들 테오가 있는데, 그의 부성애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새로운 연인 안나와 결혼을 약속하는데, 결혼에 앞서 서로에게 숨기는 비밀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안나의 비밀을 알고 싶어한다. 안나는 고민 끝에 시체가 불에 탄 사진을 보여주는데 라파엘은 큰 충격을 받고 그대로 뛰쳐나온다. 나는 이 장면에서 사람을 불타 죽게 만든 게 안나가 저지른 짓인지, 만약 안나가 한 짓이라면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지 혼자 추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뒤에 가서는 그녀가 오히려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를 의심한 나를 자책하고 만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라파엘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돌아오지만 그녀는 이미 그 자리에 없다. 이렇게 라파엘의 호기심 때문에 시작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버리나 싶다가 라파엘과 그의 이웃인 전직형사 마르크의 합동작전으로 줄줄이 연결된 사건들이 수면 위로 부상한다. 솔직히 말하면 책을 읽어나가면서 작가가 풀어놓은 떡밥이 너무 많아 나중에 이걸 다 제대로 회수할 수 있을지 괜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실들이 드러날수록 작가는 정말 치밀하게 생각해서 떡밥을 풀어놓은 거였구나하고 느끼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반전이 있다. 마르크 형사에 관한 것인데, 처음부터 그가 좀 의심스럽기는 했었다. 라파엘의 이웃으로 나오고 전직 형사여서 무뚝뚝하기만 할 것 같지만 가끔 테오를 돌봐주는 자상함과 세심함도 있다. 라파엘의 실종된 연인을 찾는 것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생명의 위협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도 그는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 혼자만의 의심인 것 같기도 하다. 전직형사인데 강제은퇴를 했으니 수사에 대한 열정이 아직 남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직업정신이 투철했으면... 이 와중에 그의 열정이 부럽기도 하다. 마르크는 마지막에 안나를 죽이려하지만 결국은 딸을 구하지 못한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분노를 안나에게 표출한 것뿐이었다. 다행히 안나는 죽지 않았다.

 

소설 속에 불륜과 정치가 연관되어져서 나오기도 하는데, 정치 풍자를 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태드 코플랜드는 정부가 있으면서도 조이스 칼라일과 불륜을 저질렀다. 둘 사이에 딸이 생겼는데, 이름은 클레어 칼라일. 조이스는 그동안 태드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지만 클레어가 납치로 실종되자 그녀는 태드의 딸이라고 밝히면 수사가 더 진전될 것이라고 하고 그에게 부탁한다. 하지만 그는 대선을 앞둔 후보였기에 자신의 앞길을 망치려는 조이스를 의도치 않게 죽이고 만다. 이 때문에 클레어는 또 납치를 당하게 된다... 클레어는 도대체 무슨 죄가 있는 것일까... 정작 그녀는 자기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다. 정치계에서는 비일비재할 수 있는 일이기에 소설의 소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 사람 인생 짓밟는 거 하나쯤은 아무렇지 않은 게 권력의 잔인함과 무서움 아닐까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바로 라파엘의 직업이 작가라는 것인데, 이 라파엘이라는 인물에 작가의 모습을 투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인 라파엘이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자세히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라파엘은 소설을 쓰기 전에 인물들의 프로필, 살아온 인생을 파일로 먼저 만들어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소설 속 인물들도 그 생김새, 성격 등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어떤 인물인지 저절로 상상이 된다. 나름 작가의 소설 쓰는 팁을 공개한 것 같기도 하다.

 

다 읽고 난 느낌은 뭐랄까. 재밌다. 내 머릿속에서 엄청 휘몰아친 느낌이었지만 결말까지 다 보고 나면 시원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뒤이어 드는 생각은 클레어 칼라일 정말 불쌍하다... 내가 이와 똑같은 일을 겪었더라면 이미 자살하고도 남지 않았을까 싶다. 꿋꿋이 살아온 클레어가 장하기만 하다. 꽃다운 나이에 납치, 강간, 불행을 종합적으로 겪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어떻게 보면 이런 인생을 살아온 건 클레어 칼라일뿐이 아닐지도 모른다. 문득 실제로 다른 곳에선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면 꼭 없어져야 하고 예방해야 하고 막아야 하는 일이다. 왜 꼭 납치의 피해자는 여성이어야 할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름 여성의 무력함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똑똑하고 좋은 직업을 가졌지만 결국 납치에서는 무력할 수 밖에 없는... 나름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었던 것 같다. 저마다 하는 생각은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다들 재밌는 소설이라고 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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