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면에서 심술궂게 생긴 할아버지가 마을 순찰을 돌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정해진 규칙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할아버지의 이름은 오베다. 오베는 천장에 줄을 매달고 자살을 시도한다. 6개월 전에 암으로 먼저 간 아내를 따라가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새로 이사 온 이웃을 만나게 되면서 자살시도는 계속 무산되고 만다. 어린 딸 2명이 있는 부부였는데, 부인은 뱃속에 아기를 가진 아랍계 여성이다. 이 부인은 혼자 사는 오베에게 밥도 챙겨주며 이웃의 정을 보여준다. 언제나 이웃과 으르렁대던 오베는 그저 당황스럽기만 하다. 입으로는 툴툴대면서도 부인이 부탁하는 것을 들어주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츤데레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중간중간에 오베가 살아왔던 과거를 보여준다. 어린 시절 오베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아버지는 기차청소부였는데, 오베가 학교를 졸업하고 갓 성인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기차에 치여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렇게 오베는 혼자 집을 짓고 살면서 아버지가 일했던 곳에서 기차청소를 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이웃집에 불이 나 그 불씨가 오베의 집에 옮겨붙게 되고 오베는 어떻게든 불을 꺼보려 하지만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어차피 불에 타 집이 무너져버릴 것이라며 불 끄는 것을 제지한다. 이 때부터 오베는 화이트카라를 한 사람들을 증오하기 시작한다.

 

집을 잃은 오베는 열차에서 밤을 보낸다. 집을 잃은 후유증이 큰 탓인지 오베는 늦잠을 자게 된다. 그 때 선실 안에서 한 여성을 만나게 되는데 이 영화의 중심인물이 되시겠다. 오베가 눈을 떴을 때 빨간 구두를 신은 여성의 다리가 화면에 잡히는데 그 장면이 나는 너무 인상깊었다. 운명적인 만남임을 명시해주는 듯한 연출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소냐, 선실 안에서 자고 있는 오베를 발견하지만 너무 곤히 자는 탓에 깨우지는 못하고 그냥 맞은 편에 않아 책을 읽고 있었다. 역장이 표를 걷으러 오자 돈이 없는 오베를 위해 표를 사주기도 한다.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오베는 매일 똑같은 시간대의 기차를 타며 그녀를 만나기 위해 애쓴다. 한 달 동안 그런 짓을 하다가 포기할 때쯤 다시 운명처럼 소냐를 만나게 된다. 오베는 소냐에게 데이트신청을 한다. 이 장면에서 오베가 정말 쑥맥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베가 어설프게 데이트신청을 하는데도 소냐는 오베가 마음에 들었는지 흔쾌히 받아들인다. 오히려 소냐가 더 적극적이었다. 그렇게 둘은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는데, 오베가 수프만 먹자 소냐는 걱정이 돼 왜 다른 음식을 먹지 않느냐고 말한다. 오베는 기차청소부인 것을 밝히고 돈이 조금밖에 없어 소냐가 먹을 음식만 시킨 것을 실토하고 만다. 수치스러움에 오베가 그만 나가려하자 소냐는 오베를 붙잡고 키스해버린다. 그렇게 둘은 예쁜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된다.

 

 

 

 

소냐는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오베는 매우 기뻐한다. 오베가 되게 말수도 적고 무뚝뚝해보이지만 아이를 정말 좋아하는 남자였다. 다만 자신이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오베에게 소냐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다독여준다. 소냐와 오베는 신혼여행을 가서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온다. 하지만 그만 돌아오는 길에 버스사고가 나고 만다. 오베는 찰과상만 입었지만 소냐는 유산을 하게 되고 하체를 쓸 수 없게 된다. 교사가 꿈이었지만 휠체어를 타고 출근하기가 어려워 소냐는 직장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오베는 사랑하는 소냐를 위해 학교에 휠체어전용 길을 만들고 소냐는 학교에 출근할 수 있게 된다. 이 과거회상 장면을 보면서 마음이 너무 따뜻했다. 서로를 위하고 애쓰는 아름답고 진정한 사랑이었다. 오베는 멋진 남편이었고 소냐는 멋진 아내였다. 소냐가 “오베”라고 부르는 장면이 너무 좋다. 그 부름에 애정과 사랑이 듬뿍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오베는 버스사고를 낸 음주운전자, 버스회사에 고소를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 과정에서 국가를 포함한 모든 것들을 원망하고 증오하게 된다. 그래서 까칠한 할아버지가 된 이유에도 이런 맥락이 연결된다. 그래도 그는 아내에게만큼은 한없이 다정한 남편이었을 것이다. 아내를 불구로 만들어버린 세상을 증오하며 아내만 바라보던 남자가 아내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웃과 소통하면서 오베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과거 자신의 아이를 잃고 슬퍼했지만 지금은 이웃의 아이들을 돌보면서 오베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핀다. 마지막에는 오베도 소냐를 따라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둘의 첫만남처럼 선실 안에서 오베는 소냐를 다시 만난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너무 뭉클했다. 잔잔하면서도 조용한 영화인데, 마음을 크게 울리는 느낌이 있다. 영화에서는 죽음을 많이 그린다. 오베 아버지의 죽음, 유산, 소냐의 죽음 등. 오베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어떻게 보면 보통 사람의 이야기인 것도 같다. 부모의 죽음, 자식의 죽음, 배우자의 죽음. 최근에 누구를 떠나보낸 사람이 이 영화를 본다면 울 수도 있다. 나는 최근 내 친구의 아버지가 상을 당하셔서 영화에 감정이입이 돼서 눈물이 맺히기도 했다. 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는 오베와 소냐의 사랑, 이웃의 정, 사람의 인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영화 자체는 되게 임팩트있지는 않은데 하루종일 여운이 가고, 가끔 생각나고, 또 언제 한 번 보고싶다. 하지만 다시 보면 또 기분이 우울해질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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