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장르가 로맨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추리, 스릴러 등 복합적인 것이었다. 이 소설에는 정말 많은 인물이 등장하는데, 읽다가 어떤 이름이 나오면 이 사람이 누구였는지 까먹을 때도 있다. 나만 그런가. 이 책은 흡입력이 정말 대단하다. 한 번 읽으면 꼭 끝까지 읽게 되는 마성의 힘이 있다. 주인공이 추리를 하면서 작가가 놓았던 떡밥들이 하나둘씩 풀리기 시작하면 너무 흥미진진해서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다. 작가 라파엘의 약혼녀 안나가 실종되면서 그 뒷면에 있었던 사건들이 줄줄이 튀어나오는데, 작가의 창의력과 천재력에 감탄하고 만다. 어떻게 이렇게 사건들을 매끄럽게 연결시킬 수 있지? 이 책 한권에만 해도 터진 사건들이 한 두 개가 아니다. 안나가 신분세탁을 하게 된 계기, 하인츠 키퍼 납치사건, 조이스 칼라일 사망, 조라 조르킨 사망 등등 수많은 사건들이 이 소설 속에 점철되어 있다. 처음에는 사건의 결과만 제공함으로써 독자들도 함께 추리할 기회를 준다. 그러다가 한 순간에 빵 터트리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난 읽다가 간혹 소름 돋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는 불륜, 정치, 범죄, 경찰 등 다양한 요소가 얽혀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사건 모두가 그냥 나오는 법이 없다. 꼭 무언가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책을 읽으면서 항상 긴장을 놓치지 않고 하나도 빠짐없이 고도의 집중력으로 읽어야 한다. 믈론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너무 흥미진진해서 집중력이 저절로 높아진다.

 

주인공은 추리 소설 작가이며 이름은 라파엘이다. 그는 아들 테오가 있는데, 그의 부성애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새로운 연인 안나와 결혼을 약속하는데, 결혼에 앞서 서로에게 숨기는 비밀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안나의 비밀을 알고 싶어한다. 안나는 고민 끝에 시체가 불에 탄 사진을 보여주는데 라파엘은 큰 충격을 받고 그대로 뛰쳐나온다. 나는 이 장면에서 사람을 불타 죽게 만든 게 안나가 저지른 짓인지, 만약 안나가 한 짓이라면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지 혼자 추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뒤에 가서는 그녀가 오히려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를 의심한 나를 자책하고 만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라파엘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돌아오지만 그녀는 이미 그 자리에 없다. 이렇게 라파엘의 호기심 때문에 시작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버리나 싶다가 라파엘과 그의 이웃인 전직형사 마르크의 합동작전으로 줄줄이 연결된 사건들이 수면 위로 부상한다. 솔직히 말하면 책을 읽어나가면서 작가가 풀어놓은 떡밥이 너무 많아 나중에 이걸 다 제대로 회수할 수 있을지 괜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실들이 드러날수록 작가는 정말 치밀하게 생각해서 떡밥을 풀어놓은 거였구나하고 느끼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반전이 있다. 마르크 형사에 관한 것인데, 처음부터 그가 좀 의심스럽기는 했었다. 라파엘의 이웃으로 나오고 전직 형사여서 무뚝뚝하기만 할 것 같지만 가끔 테오를 돌봐주는 자상함과 세심함도 있다. 라파엘의 실종된 연인을 찾는 것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생명의 위협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도 그는 오히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 혼자만의 의심인 것 같기도 하다. 전직형사인데 강제은퇴를 했으니 수사에 대한 열정이 아직 남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직업정신이 투철했으면... 이 와중에 그의 열정이 부럽기도 하다. 마르크는 마지막에 안나를 죽이려하지만 결국은 딸을 구하지 못한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분노를 안나에게 표출한 것뿐이었다. 다행히 안나는 죽지 않았다.

 

소설 속에 불륜과 정치가 연관되어져서 나오기도 하는데, 정치 풍자를 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태드 코플랜드는 정부가 있으면서도 조이스 칼라일과 불륜을 저질렀다. 둘 사이에 딸이 생겼는데, 이름은 클레어 칼라일. 조이스는 그동안 태드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지만 클레어가 납치로 실종되자 그녀는 태드의 딸이라고 밝히면 수사가 더 진전될 것이라고 하고 그에게 부탁한다. 하지만 그는 대선을 앞둔 후보였기에 자신의 앞길을 망치려는 조이스를 의도치 않게 죽이고 만다. 이 때문에 클레어는 또 납치를 당하게 된다... 클레어는 도대체 무슨 죄가 있는 것일까... 정작 그녀는 자기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다. 정치계에서는 비일비재할 수 있는 일이기에 소설의 소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 사람 인생 짓밟는 거 하나쯤은 아무렇지 않은 게 권력의 잔인함과 무서움 아닐까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바로 라파엘의 직업이 작가라는 것인데, 이 라파엘이라는 인물에 작가의 모습을 투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인 라파엘이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자세히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라파엘은 소설을 쓰기 전에 인물들의 프로필, 살아온 인생을 파일로 먼저 만들어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소설 속 인물들도 그 생김새, 성격 등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어떤 인물인지 저절로 상상이 된다. 나름 작가의 소설 쓰는 팁을 공개한 것 같기도 하다.

 

다 읽고 난 느낌은 뭐랄까. 재밌다. 내 머릿속에서 엄청 휘몰아친 느낌이었지만 결말까지 다 보고 나면 시원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뒤이어 드는 생각은 클레어 칼라일 정말 불쌍하다... 내가 이와 똑같은 일을 겪었더라면 이미 자살하고도 남지 않았을까 싶다. 꿋꿋이 살아온 클레어가 장하기만 하다. 꽃다운 나이에 납치, 강간, 불행을 종합적으로 겪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어떻게 보면 이런 인생을 살아온 건 클레어 칼라일뿐이 아닐지도 모른다. 문득 실제로 다른 곳에선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면 꼭 없어져야 하고 예방해야 하고 막아야 하는 일이다. 왜 꼭 납치의 피해자는 여성이어야 할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름 여성의 무력함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똑똑하고 좋은 직업을 가졌지만 결국 납치에서는 무력할 수 밖에 없는... 나름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었던 것 같다. 저마다 하는 생각은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다들 재밌는 소설이라고 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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