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절반 가량을 읽으면서 책 제목이 왜 라플라스의 마녀일까라는 의문을 계속 품고 있었는데, 그에 대한 힌트가 책 끝자락에 나온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라플라스는 ‘만일 우주의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해명하고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다.’ ‘어느 순간 모든 물질에 있어서의 역학적인 데이터를 알고 그것을 순식간에 해석할 수 있는 지성이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 불확실한 것은 없어져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주로 근대의 물리학 분야에서 미래의 결정성을 논할 때에 가상하는 초월적 존재의 개념이라고 한다. 후에 이 존재에게는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소설 속에서는 아마카스 겐토가 ‘라플라스의 악마로’, 마도카가 ‘라플라스의 마녀’로 지칭되고 있는 듯하다.

 

소설 첫 부분에서는 한 소녀가 토네이도로 인해 엄마를 잃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는 이 장면에 뭔가 의문이 들었다. 자연재해라니,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이 사건이 나중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걸까? 이 장면이 끝나고 나면 다케오라는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소녀의 경호원으로 일을 하게 되는 것인데, 이 소녀에게는 비밀이 많다. 그리고 이 소녀는 앞에서 토네이도로 엄마를 잃은 소녀였는데, 이름은 마도카이다. 다케오의 묘사에 의하면 마도카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날씨를 맞춘다든가, 풍선이 정확한 곳으로 가게 날린다든가, 종이비행기를 날려서 되돌아오게 한다든가, 신기한 일 투성이지만 애초에 계약할 때 마도카에 대한 질문은 금지되었기 때문에 다케오는 그저 호기심을 속에 감추고 침묵을 지킬 뿐이다. 나도 이 장면에서 그녀에게 신비한 능력이 있는 줄 알았다. 초능력인가? 그럼 ‘라플라스의 마녀’ 랑 마도카랑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들면서 과거에 토네이도로 엄마를 잃고 나서 무슨 능력을 얻게 된건가 무수히 많은 상상과 추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비현실적인 얘기라 답답할 뿐이었다. 아마 ‘라플라스’라는 단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어느 정도 더 쉽게 예상했을 거라고 본다. 인상깊었던 부분은 마도카가 도망쳤을 때 다케오가 깨닫는 장면이다. 자신은 그녀를 위험으로부터 경호하기 위해 고용된 것이 아니라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게 감시하는 역할이었단 것을... 나도 여기서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의사 아빠를 두고 있어 부유한 집의 자식이니 뭔가의 위험 때문에 경호원을 옆에 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감시원을 옆에 둔 것이었다. 그래서 항상 기리미야 레이라는 여자도 옆에 꼭 붙어다닌 거구나하고 깨닫는 나였다.

 

그리고 드디어 사건이 터진다. 치사토와 미즈키 요시로 부부가 온천여행을 갔는데 남편인 요시로가 아카쿠마 온천지에서 죽은 것이다. 치사토는 요시로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젊은 여자였고 그녀가 늙은 요시로와 결혼한 이유는 영화감독인 그의 재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리고 폭포를 보러 가기 위해 산길을 가다가 치사토가 카메라를 두고 왔다며 남편만 두고 떠난 뒤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쓰러져 있었다. 그가 죽은 자리 주위에는 황화수소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여기서 그녀의 알리바이는 성립하지만 그녀의 살해동기도 충분히 있을 뿐만 아니라 미스테리한 사건 현장은 타살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아오에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지구과학 환경 전문가로 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황화수소 사고의 원인규명을 위해 온천지에 나가게 되는데 마도카라는 소녀를 마주치게 된다. 도마테 온천에서도 황화수소 사고로 성인남자 한명이 사망하게 되는데, 거기에서도 마도카를 다시 마주치게 되고 그는 그녀에 대해 호기심을 품기 시작한다. 나카오카 형사도 그를 찾아와서는 타살 의혹을 제기하자, 그는 이 사건과 아무 관련 없을 것 같은 평범한 사람인데도 점점 사건에 말려들게 되고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아오에 교수는 두 온천지 사고의 공통점을 찾아낸다. 사망자들은 모두 영화 관련 사람들.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니 아마카스 사이세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아마카스 사이세이라는 사람의 블로그를 읽게 되고 그의 가족들도 황화수소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서 나는 머리가 터지기 시작한다. 뭔가 연계점이 발견되기는 했는데 어떻게 연결이 되는건지 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카스의 딸이 황화수소로 자살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아내도 죽고 아들은 식물인간 상태가 된 것으로 나온다. 아들 겐토는 뇌수술에 성공하고 점점 빠르게 회복하지만 기억상실로 인해 가족을 기억하지 못하고 낯선 아버지를 달갑지 않아한다. 여기서 아마카스는 더 이상 아들을 찾아가지 않았다고 하고 글이 끝나있다. 참고로 여기서 또 하나의 연계점이 나온다. 여기서 이 아들을 수술한 사람이 바로 우하라 박사. 마도카의 아버지이다. 나는 처음에 아오에가 블로그 관련 얘기를 할 때만 해도 이 아들이 중요한 인물일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였다. 그저 아마카스 사이세이에게 집중하고 있었는데, 겐토라는 인물에 대해 엄청난 진실과 반전이 뒷부분에 나온다. 일단 요약하자면 아마카스가에 일어난 황화수소 사고는 사실 아마카스가 저지른 일이고 아들 겐토는 이 사실을 알고 있고 기억상실인 척 연기한다. 그리고 앞에서 일어났던 사고들은 모두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위해 겐토라는 인물이 저지른 것이다. 여기서 또 치사토와 겐토가 공범인 사실도 드러난다.

 

여기서 어떻게 저런 일들이 가능했는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아오에 교수도 전문가이지만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겐토는 뇌수술을 받고 나서 엄청난 능력을 갖게 된다. 남들이 보면 초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 속에서는 엄연히 과학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물리적 움직임을 보고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예지능력이 생긴 것이다. 일련의 물리현상에는 사실상 예측 불가능한 요소는 일절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현상이 일어나는 순간 바로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즉 현상이 일어나기 전에는 예측하지 못한다. 오감을 통해 수집되는 현재 상황에 관한 정보를 즉각 즉각 분석해서 그다음 순간에 어떻게 될지를 예측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그저 감탄만이 나왔다. 작가가 이런 과학적인 요소도 소설 속에 넣기 위해 공부를 많이 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여기서 또 의문이 생긴다. 마도카는? 마도카도 겐토와 비슷한 능력이 있지 않나? 사실 마도카는 정상인임에도 불구하고 겐토의 능력을 가지고 싶어 겐토에게 했던 똑같은 수술을 받게 된다. 그로 인해 기적적으로 겐토와 똑같은 능력을 갖게 된 것이고. 여기서는 좀 비현실적임을 느끼긴 했다. 그녀가 겐토의 능력을 갖고 싶다 결심한 계기는 바로 맨 앞의 토네이도 사건이다. 자연재해로 인해 엄마를 잃은 슬픔으로 인해 자연재해를 예측해서 피해를 줄이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에 겐토는 아마카스를 죽이려고 하지만 마도카, 아오에 교수가 사건에 끼어들면서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겐토는 실종되고 아마카스는 병원에 입원하지만 자살한다... 마도카는 일상생활로 돌아왔지만 겐토가 사라진 후로 애써 태연한 척 한다고 다케오가 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뭔가 마지막은 흐지부지 끝나버린 느낌...? 근데 마지막에 마도카와 다케오의 대화가 인상깊었다. 마도카가 자신에 대해 한 가지만 질문해도 된다고 허락하자 다케오는 세상의 미래가 어떻게 보이냐고 질문한다. 마도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모르는 게 더 행복할 거라고 말하며 소설이 끝난다. 이 장면에서 독자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지 않나 싶다. 미래는 모르는 게 더 행복할 것이다... 이 소설 중간에 예측하지 못해야 꿈을 꿀 수 있다고 언급하는 장면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미래를 알면 얼마나 좋을까하며 가끔씩 상상해보기도 한다. 물론 나도 그런 적 있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니 어쩌면 불행한 일이 될지도 모르기에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었다. 미래를 알면서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똑같이 나쁜 일도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복권번호를 알 수 있다는 좋은 일이 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던가 하는 나쁜 일도 있다. 이런 일이 예측가능하다면 일상생활이 과연 가능할까? 그리고 이미 다 알기에 꿈을 꾸지 못한다. 꿈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이로운 것인데. 꿈을 꾸면서 희망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사람이다. 꿈으로 인해 좌절했던 마음도 다시 일으키고 또다시 노력한다.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인 면을 다룬 추리소설이긴 했지만 나름 작가의 메시지를 잘 전달했다고 본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아주 재밌다. 책이 두꺼워서 언제 다 읽나 싶지만 술술 잘 읽혀서 어느새 책 한권을 다 읽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 전부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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